펑, 펑.
천장 조명이 하나씩 터졌다. 유리 파편이 쏟아졌다. 홀이 점점 어두워졌다. 붉은 보라색 번개만 홀 한구석을 대낮처럼 밝혔다.
그 한가운데 그녀가 서 있었다.
한소율. 스물셋.
2035년 옥상에서 망가진 번개를 노려보던 그 사람이었다. 번개가 또 안 나와, 하고 투덜대던. 지금 그녀의 번개는 하나도 망가지지 않았다. 너무 멀쩡해서 그녀를 삼키고 있었다.
* * *
"다들 피해!!"
오 팀장이 측정대 위로 올라가 외쳤다. 종이컵 커피를 내던지고.
"측정기에서 떨어져! 금속 근처 가지 마!"
이천 명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렸다. 누군가 넘어지고 누군가 그 위를 밟았다. 비명이 번개 소리에 섞였다.
"이쪽이에요! 뛰지 말고, 걸으세요!"
윤하였다. 출구 앞에 서서 두 팔을 벌렸다. 서울역에서처럼. 그런데 이번엔 목소리가 떨리지 않았다.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아이를 엄마 손에 쥐여 주고, 줄을 세웠다.
예린은 반대편에 있었다. 조명 유리에 이마를 베인 학생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든 말든 손바닥에서 금빛이 피어올랐다.
"괜찮아요. 금방 막을게요."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2035년에도 그랬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셋은 늘 자기 자리를 알았다.
내 자리는 저기였다.
전생에 소율은 이 폭주 끝에 혼자 갇혔다.
이 폭주가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 곁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그리고 30일째 되는 날, 잠실 하늘에 탑이 섰다. 그녀를 1년 동안 가둔 탑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구조대가 그녀를 꺼냈을 때 그녀는 탑 꼭대기에 혼자 웅크리고 있었다. 나를 보고 처음 한 말은 이랬다. 늦었네, 대장 될 사람.
그 첫 번째를 지금 내가 보고 있었다.
* * *
번개 쪽으로 걸었다. 사람들이 도망치는 방향을 거슬러서.
측정기 두 대가 녹아 있었다. 금속 원기둥이 엿가락처럼 휘었다. 오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소나기 직전의 냄새, 그보다 몇 배 진한.
열 걸음. 아홉 걸음.
번개 한 줄기가 내 쪽으로 휘었다.
몸이 튕겨 나갔다. 가슴을 망치로 맞은 것 같았다. 등이 바닥을 미끄러졌다. 측정대 다리에 부딪혀 멈췄다.
"크윽……!"
점퍼 가슴께가 그을려 있었다. 심장이 엇박자로 뛰었다. 혀끝에 쇠 맛이 났다.
숨을 고르며 봤다.
번개는 아무 데나 치지 않았다. 측정기 금속 기둥으로 휘었다. 녹아내린 기둥 쪽으로 몰렸다. 그리고 사람 쪽으로. 가까운 사람 쪽으로. 내가 아홉 걸음 안에 들어서자 나에게 왔다.
번개는 금속과 가까운 사람에게 끌린다. 반경 열 걸음.
그 안에 들어가면 맞는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야 그녀에게 닿는다.
그녀가 무릎을 꿇었다.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입이 벌어졌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안……."
입 모양이 그랬다.
전생 3년 차, 큰 게이트에서 그녀의 마력이 날뛰었다. 그녀는 바닥에 웅크린 채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뒤 귀찮다는 얼굴로 말했다.
폭주할 땐 숨이 안 쉬어져. 누가 숨을 세 주면 돌아와.
그날 이후로 그녀가 폭주하면 내가 숨을 셌다. 십 년 동안. 그녀가 번개를 잃은 뒤로는 셀 일이 없었다.
펑.
마지막 천장 조명이 터졌다. 홀이 어두워졌다. 비상등의 초록빛과 그녀의 번개만 남았다.
조명이 터졌다. 그림자가 생겼다.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모든 것의 그림자가 바닥에 길게 그어졌다. 그녀의 그림자도. 번개가 그녀 앞에서 치면 그녀의 그림자는 등 뒤로 생긴다.
계산했다. 그녀의 그림자까지 10미터 안. 그림자 걸음 한 번. 그리고 그 자리는 반경 안이다. 번개가 나를 칠 것이다. 번개 하나는 방벽으로 3초.
3초면 된다. 손목만 잡으면.
번쩍.
그녀의 등 뒤로 그림자가 그어졌다.
들어가.
차가운 물에 빠지는 감각. 번개 사이를 건너뛰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등 뒤 그림자에서 튀어나왔다.
번개 한 줄기가 곧장 나를 향해 휘었다.
성흔 방벽.
손바닥 앞에 흰 육각이 떴다. 접시만 한. 번개가 거기 꽂혔다.
쩌정.
하나.
육각이 휘었다. 너무 작았다. 번개가 육각 가장자리로 넘쳐 손등을 태웠다. 살이 지글거렸다.
둘.
이를 악물었다.
셋.
육각이 터졌다. 번개도 같이 흩어졌다. 그 3초 동안 다른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 * *
번개가 손을 타고 들어왔다. 뼈가 타는 것 같았다. 놓지 않았다. 괴력이 손목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가 다치지 않을 만큼만. 내가 놓치지 않을 만큼만.
그녀가 몸부림쳤다. 숨이 막힌 채로. 등이 내 가슴에 부딪혔다. 정전기에 떠오른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때렸다.
그녀의 귀 바로 뒤에서 말했다. 천천히.
"숨 내쉬어요. 천천히."
그녀의 몸부림이 멈칫했다.
"하나."
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등에 내 가슴이 닿아 있었다. 내 숨이 빠지는 게 그녀 등으로 전해지게.
"……둘."
둘에서 한 번 쉬었다. 십 년 동안의 버릇이었다. 그녀가 숨이 막힐 때 둘에서 기다려 줘야 따라왔다.
그녀가 숨을 내쉬었다. 아주 조금. 떨리면서.
"하나."
이번엔 그녀가 먼저 따라 내쉬었다.
"……둘."
번개가 가늘어졌다. 손바닥을 태우던 열기가 조금 식었다. 그녀의 숨이 길어졌다. 내 숨에 맞춰서. 하나, 둘. 하나, 둘.
마지막 번개가 그녀의 손끝에서 피식 꺼졌다.
홀이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녀의 숨소리와 내 숨소리만 남았다. 손을 놓지 않았다. 그녀도 빼지 않았다.
* * *
그녀의 무릎이 꺾였다. 마력을 다 쏟아 낸 몸이 무너졌다. 받쳐 안았다. 탄 손등이 그녀 허리에 닿았다. 아팠다. 놓지 않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내 품 안에서, 아주 가까이서.
보라색 눈이 원래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고양이 같은 눈. 눈가가 젖어 있었다. 코끝이 빨갰다. 코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2035년과 같은 자리였다.
그녀의 눈이 내 얼굴을 훑었다. 이마, 눈, 코, 입. 무언가를 맞춰 보는 눈이었다.
"당신……."
그녀가 내 그을린 점퍼 앞섶을 쥐었다.
"왜 내 꿈에 나와요?"
숨이 멎었다.
비상등 아래, 홀 저편에서 두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꿈?"
"꿈이요?"
윤하와 예린이었다. 출구와 반대편 벽에서, 서로 열 걸음 떨어진 채로, 똑같이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소율이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자기가 어떤 자세로 안겨 있는지 깨달은 얼굴이었다. 내 손을 뿌리쳤다.
"……놔요."
비틀거리며 일어나 홀 뒷문으로 달려갔다. 보라색 롱코트 자락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낯을 가렸다. 십 년 전에도. 처음 3년은 나한테 눈도 안 맞췄다. 그런 사람이 방금 내 점퍼를 쥐고 물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꿈 얘기를.
* * *
오 팀장이 손전등을 들고 다가왔다. 녹아내린 측정기 세 대를 하나씩 비춰 봤다. 내가 부순 것까지.
"측정 불가 2호냐."
그가 내 손등을 비췄다.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오고 방패까지 펴는 F급이 어딨어."
"제 측정기는 부서졌잖아요."
그가 손전등을 내렸다. 한참 나를 봤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아주 길게.
"……보고서는 내가 알아서 쓴다."
돌아서다 멈췄다.
"다음엔 좀 숨기기라도 해."
…방벽이 아직 작다. 손등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예린이 뛰어왔다. 내 손을 보고 숨을 삼켰다. 말없이 두 손으로 감쌌다. 금빛이 비상등의 초록빛 속에서 피어올랐다. 검게 탄 살이 천천히 분홍빛으로 돌아왔다.
"또 다치셨네요. 이번엔 거짓말도 못 하시겠죠?"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화가 섞여 있었다.
치유가 끝나도 그녀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손등의 새살을 엄지로 몇 번이나 쓸었다. 그러다 고개를 숙인 채 작게 말했다.
"아까 이현 씨가 번개 속으로 걸어갈 때요. 저 다른 사람 치료하다가 손이 멈췄어요. 처음이에요. 치료하다 손이 멈춘 거."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손을 놓았다. 놓고 나서 앞치마 대신 니트 자락에 손을 문질렀다. 진료소의 버릇이었다.
윤하가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을린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털어 냈다. 손끝이 귀 옆을 스쳤다. 손이 차가웠다. 출구에서 이천 명을 줄 세우고 막 뛰어온 손이었다. 그녀가 내 머리카락에 붙은 유리 조각을 하나씩 떼어 냈다. 아무 말 없이, 아주 조심스럽게.
"그래서 꿈은 무슨 꿈이에요?"
"……저도 모르는 꿈이에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녀의 꿈에 내가 왜 나오는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짐작은 갔다. 내 손바닥의 붉은 자국. 수정을 터뜨린 그것. 무언가가 나를 따라 이 시간으로 넘어왔다. 그 무언가가 그녀의 꿈에 새어 들어간 걸까. 아니면 그녀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전생에도 그녀는 가끔 아무 이유 없이 내가 다칠 곳을 먼저 알았다.
멀리 출구 쪽에서 협회 직원이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율의 목소리였다. 짧고, 낮고, 불퉁한.
"……아까 그 사람. 이름이요."
"강이현 씨요. F급이던데요."
"F급은 무슨."
그녀의 발소리가 멀어졌다.
* * *
홀 2층 난간을 올려다봤다. 비상등 불빛 아래 흰 정장이 서 있었다. 다 본 얼굴이었다. 측정기, 그림자, 방패, 숨 세기.
그가 웃었다. 입 모양이 읽혔다.
역시.
그리고 한 마디 더.
숨기는 건 서툴군.
그가 돌아서 사라졌다.
숨기려고 온 자리였다. 그런데 오늘 하루 동안 절반은 보여 줬다. 측정기를 터뜨렸고, 그림자로 건너뛰었고, 하진의 방패를 폈다. 그는 그걸 다 봤다.
화가 났다. 그 사람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그런데 돌아보면 다른 길이 없었다. 그녀가 거기 있었다. 열 번을 다시 해도 똑같이 뛰었을 것이다.
【숨겨진 퀘스트】 【그녀들을 지켜라】 【서윤하 — 구출 완료】 【차예린 — 구출 완료】 【한소율 — 남은 시간 22일】
창이 한 번 깜빡였다. 그 아래로 처음 보는 줄이 새로 그어졌다. 빨간 글씨였다.
【새 목표가 추가되었습니다】 【백건우 — 처치 목표】
기록자가 처음으로 내 편을 들었다. 아니면 처음부터 그랬는지도.
전생에 소율은 혼자 갇혔다. 숨을 세 줄 사람이 옆에 없었다.
이번엔, 숨을 세 줄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