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모레 승급 시험 봐요! F→E! 응원해 주세요!]
그 문자를 이틀 동안 몇 번이나 다시 열었다.
……그 게이트다.
전생에 그날, 신입 셋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름은 몰랐다. 뉴스에는 '협회 신입 요원 3명'이라고만 나왔다. 나이도 얼굴도 없이. 그 뉴스를 나는 재활 병원 대기실 텔레비전으로 봤다. 윤하의 병실 앞에서. 그때 그녀는 무릎 수술을 막 끝낸 참이었다.
그녀는 그 뉴스를 보고 오래 울었다. 자기가 들어갔어야 할 시험이었다고.
* * *
시험 날 아침, 고시원 공용 주방.
예린이 주먹밥 다섯 개를 싸서 내 가방에 넣었다. 다섯. 나와 윤하 몫에 셋이 더. 누구 몫이냐고 묻자 그녀가 웃었다. 같은 조에 누가 있을지 모르잖아요. 밥은 같이 먹어야 덜 무서워요.
소율은 아침 일곱 시에 고시원 계단에 앉아 있었다. 떡볶이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작은 보라색 구슬이었다. 손가락 마디만 한.
"어젯밤에 손끝으로 흘려 보내다가 이렇게 굳었어요. 쥐고 있으면 따뜻해요. 쓸모는 몰라요."
"윤하 씨 줘요. 시험 보는 사람."
"……당신이 줘요. 내가 주면 이상하잖아요."
그녀가 계단을 내려갔다. 돌아보지 않고. 구슬을 주머니에 넣었다. 따뜻했다.
* * *
4월 24일 오전 9시 40분. 협회 승급 시험장.
한강 다리 아래, 교각 사이 공터였다. 철제 펜스가 둘러쳐 있었다. 펜스 안쪽 땅이 꺼진 자리 위로 파란 균열이 일렁였다. 협회가 일부러 닫지 않고 관리하던 E급 게이트였다. 다리 위로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교각이 웅웅 울렸다. 강물 비린내가 바람에 실려 왔다.
펜스 입구에 천막 하나. 그 앞에 응시자 서른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다들 가슴에 하얀 명찰을 달았다.
내 명찰에도 적혀 있었다. 응시자 강이현, F급.
"이현 씨가 왜 여기 있어요?!"
윤하였다. 제복 차림으로 줄 앞쪽에서 돌아보다 나를 발견했다. 얼음색 눈이 동그래졌다.
"F급이잖아요. 저도."
"F급은,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그녀가 내 명찰을 봤다. 진짜 명찰이었다. 어제 협회 접수창구에서 받았다. F급 등록자도 승급 시험을 볼 수 있다고, 측정회 공지 맨 아래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천막 그늘에서 오 팀장이 서류철을 들고 나왔다. 줄을 훑어보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손목시계를 봤다.
"……진짜 왔네. 열 시 사십 분이라고 했지."
"네."
그가 아무 말 없이 천막으로 돌아갔다. 들어가기 직전, 탐지기 하나를 집어 들어 허리에 차는 게 보였다.
* * *
조는 다섯 명씩이었다. 윤하와 나, 그리고 신입 셋.
조 편성표를 받아 든 윤하가 내 이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누가 짰는지 뻔하다는 얼굴이었다. 천막 쪽을 노려봤다. 오 팀장은 서류철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E급 시험? 눈 감고도 하지."
키 큰 남자가 어깨에 멘 대검을 툭툭 쳤다. 스물여섯쯤. 머리를 짧게 깎고 턱을 치켜들고 있었다. 명찰에 태오. 검이 너무 커서 걸을 때마다 칼집 끝이 땅을 긁었다.
"자, 잘 부탁드려요……!"
단발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스물셋. 등에 활을 메고 있었다. 화살통의 화살이 떨리는 손 때문에 달그락거렸다. 수아.
마지막 하나는 내 옆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스물둘. 앳된 얼굴, 왼팔에 작은 원형 방패. 정민. 그가 화면을 내게 보여 주며 웃었다.
"엄마한테 문자 보냈어요. 점심 먹고 간다고."
화면에 답장이 와 있었다. [그래 잘하고 와 우리 아들 김치찌개 해 놓을게]
저 셋이다.
전생의 뉴스엔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알 수 있었다. 이 조, 이 셋. 허세 부리는 대검, 떨리는 활, 엄마한테 문자 보내는 방패. 이름 없는 숫자 셋이 지금 내 앞에서 숨 쉬고 있었다.
오 팀장이 확성기를 들었다.
"목표는 고블린 족장. 제한 두 시간. 위험하면 탈출석 깨."
신입들 손에 주먹만 한 회색 돌이 하나씩 쥐어졌다. 탈출석. 깨면 게이트 밖으로 나간다. 협회가 이번 시험을 위해 처음 들여온 장비였다.
윤하에게 다가가 작게 말했다.
"윤하 씨. 오늘은 신입들 앞에 서게 될 거예요."
"……또 무슨 정보예요?"
"그냥 감이요."
그녀가 나를 노려봤다. 믿지 않는 눈이었다. 그런데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주머니에서 보라색 구슬을 꺼내 그녀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소율 씨가요. 쥐고 있으면 손 안 떨린대요. 아마도."
"아마도요?"
"처음 만든 거래요."
그녀가 구슬을 한참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제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심장 쪽 주머니였다. 귀가 빨갰다. 그 아이,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미운 기색은 없었다.
나는 뒤에서. 윤하 씨가 앞에 서게.
내가 앞에 서면 신입들은 나만 본다. 그러면 D급이 열렸을 때 그들은 나 하나만 믿고 흩어진다. 윤하가 앞에 서야 했다. 그들이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같은 F급이.
* * *
게이트 안은 동굴이었다. 축축한 흙냄새, 멀리서 물 떨어지는 소리. 벽에서 자라는 파란 이끼가 희미하게 빛났다.
고블린은 쉬웠다. 윤하에게는.
그녀가 맨 앞에 섰다. 찌르고, 빠지고. 발이 늦지 않았다. 지하 묘지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칼이 들어간 순간 이미 몸이 빠지고 있었다.
태오가 그녀를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비켜, 내가 할게."
대검을 휘둘렀다.
휘잉.
헛스윙이었다. 고블린이 대검 밑으로 쏙 빠져나갔다. 검의 무게에 태오가 한 바퀴 돌았다.
쿵.
엉덩방아를 찧었다. 고블린이 그의 머리 위로 칼을 들었다. 윤하의 칼끝이 먼저 고블린의 목을 찔렀다.
"……어?"
태오가 바닥에 앉은 채 눈을 깜빡였다.
그사이 동굴 천장 틈에서 고블린 하나가 떨어졌다. 맨 뒤의 수아 쪽으로. 그녀는 활시위를 당기느라 위를 못 봤다.
나는 맨 뒤에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발을 뻗어 떨어지는 고블린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괴력을 조금만 실어서. 고블린이 동굴 벽에 부딪혀 기절했다. 수아가 소리에 돌아봤을 때 나는 다시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으……."
정민이 굳어 있었다. 고블린 둘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방패를 든 팔이 떨렸다.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서울역의 그날 윤하처럼.
"정민 씨, 내 뒤로!"
정민이 방패를 끌어안은 채 그녀 등 뒤로 기어갔다. 무릎이 흙투성이였다.
윤하가 뛰었다. 정민 앞에 섰다. 고블린 둘을 찌르고, 빠지고, 찔렀다. 정민이 그녀 등 뒤에서 방패를 끌어안고 숨을 몰아쉬었다.
* * *
동굴 가장 깊은 곳에 족장이 있었다.
다른 고블린의 두 배 크기. 녹슨 투구를 쓰고 양손에 도끼를 들었다. 놈이 포효했다. 동굴 벽이 울렸다.
윤하가 앞으로 나섰다. 숨을 내쉬었다.
족장의 도끼가 내려왔다. 그녀가 옆으로 피했다. 찔렀다. 칼끝이 족장의 팔을 스쳤다. 족장이 다른 도끼를 가로로 휘둘렀다. 그녀가 칼로 막았다. 너무 무거웠다.
그녀의 몸이 날아갔다. 동굴 벽에 부딪혀 나동그라졌다. 칼이 손에서 빠졌다.
족장이 그녀에게 걸어갔다. 도끼를 머리 위로 쳐들었다.
신입 셋이 얼어붙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다들 족장만 봤다.
발밑의 조약돌 하나를 주웠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웠다. 괴력을 손가락 끝에만.
튕겼다.
조약돌이 동굴의 어둠을 가로질렀다. 소리도 없이. 족장의 투구 틈, 왼쪽 눈에 박혔다.
족장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젖혔다. 도끼가 허공을 휘저었다.
그 틈에 윤하가 칼을 주웠다. 일어나며 찔렀다. 몸통째. 족장의 목 아래로.
족장이 무너졌다.
"끝났다!!"
태오가 외쳤다. 대검을 머리 위로 쳐들고. 한 번도 휘두르지 않은 검이었다.
"봤지? 내가 다 했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수아가 윤하에게 달려갔다. 안경 너머 눈이 반짝였다.
"서, 선배님 멋있어요……!"
"선배 아니에요! 저도 F급이에요!"
윤하가 손을 저었다. 귀가 빨갰다. 그러다 족장의 시체 쪽을 봤다. 족장의 왼쪽 눈. 거기 박힌 작은 조약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동굴 맨 뒤, 벽에 기대 선 나를.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방금 그 돌…….
못 본 척했다. 그녀가 칼을 집어넣고 내 쪽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었다. 무전기 시계가 10시 38분에서 39분으로 넘어갔다.
* * *
10시 39분.
동굴이 흔들렸다.
족장의 시체 뒤, 동굴 안쪽 벽에 금이 갔다. 붉은 금이었다. 금 사이로 붉은빛이 새어 나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나왔다. 깊은 땅속 냄새, 젖은 돌 냄새. 그리고 그 밑에 깔린 짐승 비린내. E급 게이트에서 날 리 없는 냄새였다.
신입들이 뒷걸음질 쳤다.
허리에 찬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오 팀장의 목소리였다. 게이트 밖, 천막 앞에서 탐지기를 보고 있을 것이다.
"……진짜냐."
한 박자 쉬고, 그가 소리쳤다.
"전원 탈출석 깨!!"
태오가 탈출석을 바닥에 내리쳤다. 수아도, 정민도. 돌이 깨졌다. 회색 가루가 흩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다.
"안 깨져요! 아니, 깨졌는데 안 나가져요!"
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깨진 탈출석 가루가 바닥에서 힘없이 흩어졌다.
【경고】 【D급 균열 발생】 【탈출 경로가 봉쇄되었습니다】
D급 균열이 E급 게이트의 출구를 막았다. 들어온 길로는 나갈 수 없었다. 저 균열을 닫기 전에는.
정민이 방패를 떨어뜨렸다.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에 엄마의 문자가 떠 있었다. 김치찌개 해 놓을게.
"엄마……."
속삭임이었다.
붉은 금이 벌어졌다. 바위가 떨어져 나갔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왔다.
회색이었다. 바위로 된 가죽. 사람 키의 두 배. 팔이 땅에 닿을 만큼 길었다. 등에 붉은 수정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놈이 숨을 쉴 때마다 수정이 희미하게 빛났다.
돌가죽 트롤. D급.
신입 셋이 굳었다. 태오의 대검이 떨렸다. 수아가 시위를 당기지 못했다.
윤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칼을 들었다. 그녀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칼끝은 트롤을 향해 있었다.
"다들, 내 뒤로."
반듯한 목소리였다.
그날처럼.
서울역, 아이를 안은 엄마와 할머니와 대학생 둘 앞에서.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하던 그 목소리. 그날 나는 그녀 앞에 섰다. 오늘은 그녀 옆에 선다. 그녀가 앞에 선 채로.
트롤이 포효했다. 동굴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등의 붉은 수정이 빛났다.
전생에 이 앞에서, 신입 셋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