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을 기억하는 헌터

6화 · 명동의 치유사

축복합니다.

텔레비전 속 그 입 모양이 밤새 눈앞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침에 명동 거리를 걸었다. 전봇대마다, 가게 유리문마다 전단이 붙어 있었다. 사람을 찾습니다. 같은 글씨체, 다른 얼굴. 다 젊은 여자였다. 세어 봤다. 일곱 장.

명동에서만 일주일 사이 실종 일곱 명.

4월 14일. 차예린이 끌려가기까지 4일.

가게 유리문에 내 모습이 비쳤다. 검은 후드 점퍼. 어젯밤 사냥개에게 트레이닝복 소매가 너덜너덜하게 찢겨서, 새벽에 동대문 시장에서 만 원 주고 산 것이었다. 슬리퍼 청년의 트레이닝복은 이제 쓰레기통에 있었다.

【장비 변경: 검은 후드 점퍼】 【방어력: 0】

알고 있다.

* * *

명동 대로에서 두 골목 들어간 곳에 작은 성당이 있었다. 붉은 벽돌이 검게 그을린 오래된 건물. 지하 계단 입구에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무료 진료소 — 누구나 오세요]

계단을 내려가자 소독약 냄새가 났다. 그 밑에 초 타는 냄새와 오래된 나무 냄새가 깔려 있었다. 낡은 철제 침대 셋, 등받이 없는 의자들. 대기 의자에 할머니 넷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끝자리에 앉았다.

할머니들이 일제히 나를 봤다.

"총각, 어디 아파? 젊은 사람이 여긴 웬일이야."

"……팔이요."

왼팔을 보여 줬다. 윤하가 묶어 준 손수건이 아직 감겨 있었다.

"여기 선생님 손이 약손이야."

옆자리 할머니가 내 무릎을 툭툭 쳤다.

"우리 영감 허리도 그 손으로 나았어. 병원에서 수술하자던 걸."

"그건 선생님이 아니라 봉사자 아가씨여."

"선생님이나 아가씨나."

할머니들이 저희끼리 웃었다. 하나가 가방에서 귤을 꺼내 내 손에 쥐여 줬다. 젊은 사람이 얼굴이 왜 그리 허옇냐며. 다른 하나는 내 후드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려 줬다. 바람 들어간다고.

전생에 나는 이런 손길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엄마 말고는. 그 사이 진료실 커튼이 걷혔다.

"다음 분, 들어오세요."

* * *

꿀빛 금발이 어깨 아래로 물결치며 흘러내렸다. 처진 호박색 눈. 크림색 긴소매 블라우스 위에 아무 장식 없는 흰 앞치마. 가슴에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차예린. 진료소 봉사자.

숨이 막혔다.

이 손으로 십 년 버텼어요.

2035년 옥상에서 떨리는 손으로 내 팔을 붙잡던 그녀가 겹쳐 보였다. 3년 동안 갇혀 빛을 뽑히고 나온 뒤, 치유할 때마다 떨리던 손. 그 손으로 십 년 동안 우리를 고쳤다.

지금 그녀의 손을 봤다. 할머니의 손등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손.

떨리지 않는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다정한 목소리였다. 십 년 동안 듣던 높이 그대로.

"오늘 아침에 좀 긁혀서요."

의자에 앉자 그녀가 의자를 끌어와 무릎을 맞댔다. 내 팔을 자기 무릎 위에 올렸다. 손수건 매듭을 풀다가 손이 멈췄다.

"예쁜 손수건이네요. 여자 친구분이?"

"……아니요."

그녀가 웃었다. 볼에 보조개가 파였다. 믿는 웃음이 아니었다.

손수건을 걷었다. 이빨 자국이 드러났다.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처진 눈매는 그대로 부드러운데, 눈빛만 칼끝 같아졌다.

"오늘 생긴 상처가 아니네요. 어젯밤이죠."

손가락으로 상처 가장자리를 짚었다.

"피가 굳은 지 열 시간은 넘었어요. 그리고 짐승 이빨 자국. 개보다 커요. 아니, 개가 아니네요."

……여전히 눈치가 빠르다.

전생에도 그랬다. 내가 괜찮다고 할 때마다 그녀는 내 걸음걸이 하나로 어디를 다쳤는지 맞혔다. 거짓말이 통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진료실 커튼 너머를 살폈다. 할머니들이 대기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계단 위 문 쪽을 한 번 더 봤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잠깐만 눈 감아 주실래요?"

눈을 감았다.

손바닥 두 개가 내 팔을 감쌌다. 따뜻했다. 그 따뜻함이 점점 짙어졌다. 눈꺼풀 너머로 금빛이 비쳤다. 상처 위로 따뜻한 물이 흐르는 것 같았다. 벌어진 살이 안쪽부터 천천히 붙는 게 느껴졌다. 꽃 냄새 비슷한 단내가 났다.

따뜻하다. 전생의 마지막 날과 같은 빛.

2035년 옥상에서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를 감쌌던 그 금빛. 떨리지 않는 이 손에서는 그보다 훨씬 밝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부셨다.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눈을 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녀의 엄지가 아문 자리를 쓸었다. 확인하듯 한 번, 그리고 이유 없이 한 번 더. 금발 몇 가닥이 내 손등에 떨어졌다. 간지러웠다. 숨을 쉬면 그녀 머리카락 냄새가 들어왔다. 비누와 초 냄새.

"이제 뜨셔도 돼요."

눈을 떴다. 팔의 이빨 자국이 분홍색 새살로 덮여 있었다. 그녀가 손을 거두며 앞치마에 문질렀다. 귀가 빨갰다.

"비밀이에요. 소독약이 잘 들은 걸로."

"왜 숨겨요?"

그녀가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작게 말했다.

"치유 능력이 생긴 사람들이요. 자꾸…… 사라진대요."

밖에 붙은 전단 일곱 장이 떠올랐다.

"그래서 여기서만, 조금씩요. 할머니들 무릎 정도만."

"……조심하세요."

그녀가 내 얼굴을 봤다. 처음 보는 사람이 하는 말치고 너무 진지했던 모양이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웃었다.

"다음엔 거짓말 말고 그냥 오세요. 긁힌 거 아니잖아요."

* * *

계단 위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대기실 수다가 뚝 끊겼다.

흰 후드를 깊게 눌러쓴 사람 다섯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가슴에 같은 무늬가 수놓여 있었다. 흰 바탕에 감은 눈 하나.

흰 후드, 감은 눈 문양. 백야교.

벌써 냄새를 맡았나.

그 뒤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내려왔다.

흰 사제복. 긴 은회색 머리를 한쪽으로 묶어 어깨 앞으로 늘어뜨렸다. 실처럼 가는 눈, 목을 감고 올라간 흰 뱀 문양. 입꼬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올라가 있었다. 어젯밤 텔레비전 속의 그 얼굴.

백합 냄새가 지하로 밀려 내려왔다. 지나치게 달았다. 장례식장 꽃처럼.

하진. 백야교 사제.

"성녀님을 모시러 왔습니다."

느린 목소리였다. 한 글자 한 글자를 혀 위에서 굴리는 사람처럼.

예린이 진료실 커튼 앞으로 나섰다.

"저는 성녀가 아니에요. 여긴 진료소예요."

"그 빛을 이런 곳에서 낭비하시다니요."

하진이 지하 진료소를 둘러봤다. 낡은 침대, 할머니들, 반창고 상자.

"모두를 위해 쓰셔야지요."

"저는 지금, 모두를 위해 쓰고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런데 앞치마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하진의 실눈이 천천히 돌았다. 진료실 안쪽, 의자에 앉아 있는 나에게서 멈췄다. 새살이 돋은 내 팔에서.

"그런데, 이분은?"

"환자요. 아직 진료 중이라."

예린이 내 앞을 막아서듯 한 걸음 옮겼다. 십 년 뒤의 그녀와 같은 동작이었다. 다친 사람 앞에 서는 것.

하진이 웃었다. 고개를 숙였다. 정중하게, 오래.

"축복합니다. 다시 오겠습니다."

그들이 계단을 올라갔다. 백합 냄새는 한참 남았다.

우지직.

손 밑에서 소리가 났다. 내려다봤다. 의자 팔걸이가 내 손 모양대로 으스러져 있었다. 나무 조각이 손가락 사이로 떨어졌다.

예린이 그걸 봤다.

"의자가……."

"원래 이랬어요."

그녀가 의자를 봤다. 나를 봤다. 무언가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대신 다리가 풀린 듯 진료 침대 끝에 털썩 앉았다. 앞치마를 쥔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그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할머니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아가씨, 괜찮아? 저 사람들 또 왔어?"

"일주일째여, 일주일째."

"경찰에 신고혀야 혀."

예린이 웃었다. 괜찮다고, 손을 저으며. 할머니 하나가 그 떨리는 손을 붙잡아 자기 손바닥으로 덮었다. 주름진 손이었다. 그 손이 예린의 손을 꼭 쥐고 놓지 않았다.

그녀의 떨림이 조금씩 멎었다. 치유하는 사람의 손을, 치유받던 사람들이 붙잡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돌아간 뒤 그녀가 냉장고를 열었다. 은박지에 싼 주먹밥 두 개를 꺼내 하나를 내 손에 쥐여 줬다.

"아침 안 드셨죠. 얼굴이 그래요."

"그쪽 점심 아니에요?"

"두 개 싸 왔어요. 하나는 할머니 드리려고 했는데 오늘 떡을 가져오셨거든요."

주먹밥 속에 볶은 김치가 들어 있었다. 짰다. 십 년 동안 그녀가 싸 주던 주먹밥과 같은 맛이었다. 그녀는 늘 김치를 너무 오래 볶았다.

"맛있어요."

"거짓말. 짜죠? 저 원래 간을 못 맞춰요."

"그래서 맛있어요."

그녀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나를 봤다. 그러다 자기 주먹밥을 한 입 베어 물고 얼굴을 찡그렸다. 진짜 짰나 보다. 둘이 같이 웃었다. 백합 냄새가 그제야 조금 옅어졌다.

성흔 방벽. 전생 2028년의 백야교 토벌대 열둘이 저 사제의 흰 방패 하나를 못 뚫었다. 나는 그 열둘 중 하나였다. 그날 처음으로 그녀를 지하에서 꺼냈다. 3년 늦게.

【상태창】 【레벨 9 / 다음 레벨까지 82%】 【잠긴 기억 — 레벨 10에 열림】

하나만 더 올린다. 그다음엔 저 방패를 갈라 본다.

* * *

성당을 나와 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백야교라고, 협회에 뭐 있어요?"

"그거 내부 자료인데요……!"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와 복도로 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거래니까요. 실종자 일곱 명, 전부 치유 계열이에요. 각성 신고를 한 사람도 있고 안 한 사람도 있는데, 다 손으로 뭘 고치는 능력이래요."

"협회는요?"

"증거가 없어서 협회는 손을 못 대고 있어요. 다 성인이고, 가출일 수도 있다고요."

"고마워요."

"다친 팔은요?"

"나았어요. 약손이 있어서."

"……약손?"

목소리가 묘하게 날카로워졌다. 대답하지 않고 끊었다.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붉은 자국이 희미하게 뛰었다.

이 손이 뭐라고. 셋을 다 놓친 손이.

* * *

골목을 돌다 성당을 돌아봤다. 지하 창문 너머로 예린이 보였다. 진료소 문을 잠그고 있었다. 잠그고 나서 한참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까 금빛이 나던 손을.

그리고 맞은편 건물 옥상에 흰 옷자락이 걸려 있었다.

하진이었다. 옆의 신도에게 무언가 말하고 있었다.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그 느린 입 모양은 읽혔다.

그 청년, 알아봐 주세요.

실눈이 이쪽으로 돌기 전에 골목 그림자로 몸을 숨겼다.

【숨겨진 퀘스트】 【차예린 — 남은 시간 4일】

나흘. 그 안에 레벨 10. 그리고 그 안에, 저 방패.